쁘띠엔젤 사건은 2003년 7월 일본 도쿄 아카사카 아파트에 초등학교 6학년 소녀 4명이 유괴 감금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03년 7월17 한 소녀가 아카사카의 꽃집으로 다급하게 들어와 도움을 청하며 사건이 세상에 들어났다.
사건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7월13일.
범인은 집 청소를 해주면 1만엔(10만원쯤?)을 주겠다며 유인하여 초등학교 6학년 소녀 4명을 자신의 집에 감금시킨다.
범인과는 시부야역 앞에서 만나, 택시로 아카사카의 아파트에 들어갔다.
아파트에서 청소를 시작하려하니 "여기에 온 의미 알겠지"라고하며 범인의 태도가 돌변하며 수갑, 눈가리개등을 이용하여 결박후, 준비해 놓은 20리터 물탱크와 아령을 달아놓고 도망치지못하게한다.
15일.
소녀들의 부모에 의해 실종신고가 접수되어 언론보도되고 인근지역의 대대적인 탐문수사가 시작된다.
16일.
오전 9시경 범인이 거실에 삼각텐트모양으로 비닐을 치고 비닐 안에서 일본 고기굽기용 스토브에 연탄을 피워 돌연 자살한다.
17일.
밖에서 아무소리도 들리지않는다는것을 알게된 한 소녀가 수갑을 푸는것에 성공하여 다른 소녀들의 결박도 풀어주려 했지만 실패하고, 혼자 탈출해 아파트인근에있던 꽃집에 도움을 요청해 경찰에 알려진다.
이사건은 소녀들을 모두 무사히 구출하고 범인은 자살하여 이미 해결된 사건이지만
사건 이후 범인의 신상과 과거 행적이 알려지며 아직도 일본국민들에게는 석연치않은, 아직 해결되지않은 사건으로 인식되고있다.
범인 요시자토 코타로(吉里弘太郎)는 부유한 환경에서자랐다고 알려졌다.
아버지는 전 아사히 신문 서부 본사 사회부장이었고 그는 일본 예술대학의 최고봉인 도쿄 국립예술대학을 졸업하였다.
범인 요시자토는 그 좋은 교육을 받고 졸업후에는 호스트바에서 알바를 하는등 화류계쪽에 눈을 떠 무점포형태의 불법 미성년자 데이트 클럽 <쁘띠엔젤>을 경영하는등 예술대학을 나와 인생을 예술적으로 말아먹고있었다.
클럽은 회원제로 연회비가 60만엔(600만원정도), 미성년과의 성xx로 5만엔(50만원정도)이 시세였다고 알려져 있다.
몇 명의 소녀들이 일하고 있었는지, 그 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범인 요시자토가 사망후 발견된 회원 리스트에만 2,000명 정도였다고 하니 상당히 많은 소녀들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되고있다.
문제는 범인 요시자토가 사망후 발견한 저 회원 리스트인데 경찰은 저 리스트의 이름이 모두 가명이나 별명으로 적혀있어 추적이 불가능하다고 발표한뒤 수사를 종결해버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언론도 시민들의 의심을 키우는데한몫하고 있을 무렵 혼자서 끈질기게 이사건을 취제하던 프리렌서 기자 소메야 사토루 (染谷 悟)씨가 살해당한체 2003년 9월 12일 도쿄 만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시신은 두개골이 함몰되고 8곳이상의 자상이 발견되었으며 상반신은 사슬로 묶여있는상태였다.
이쯤되니 회원명단 (정치 관계자, 황족, 법조인, 등의 이름이 있기때문에) 이 공개되면 일본이 발칵뒤집힌다는둥 범인은 자살한것이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식의 나름 합리적의심을 하는 음모론들이 떠오르며 민심은 시끄러웠지만 경찰과 언론은 조용히넘어갔던 사건이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는 아직도 쁘띠엔젤 사건의 진상이 봉인된 이유가 "정재계 거물들의 이름이 올라간 고객 리스트"때문이며, 아직 어딘가에 그 리스트가 존재할것이라는식의 음모론이 도시 전설적으로 회자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