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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놓기/옛날에

할머니

by Deye 2017. 4. 7.








나에겐 할머니가있다.

 

어린시절 가파른곳에있던 학교가 걱정되어 손수 나의 가방을 짊어지고 학교앞까지 데려다주던 할머니

학교에서 돌아오면 밥먹으라며 고봉밥을 내오고는 밥이얼마없다며 라면 하나를 끓이겠다던 할머니

그런할머니의 밥타령에 질려 안먹겠다는 심술을부리고

이놈의 못된심보는 지금까지도 먹는것을 싫어하게 만들었다

 

 

뻔한 이야기

 

시골마을에서 얼굴도 모르는 남편과 결혼하고 평생을 자식,남편 뒷바라지하며 살다가 이제는 할수있는것이

'밥하는것'밖에 남지않은 어떤 오래된 여자의 뻔하디 뻔한 슬픈이야기...

 

이제는 그마저도 할수없을만치 거동이불편해지고 말도 제대로 하지못하는 쭈구렁 할머니...

 

아직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 거실로 나가보면 부엌에 할머니가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쌀을 씻으려 바가지에 물을 담는 할머니가 있다.

휘청거리는 다리를 애써 지탱하며 주방한켠에 있는 할머니가 있다.

그러다 넘어지고

아파하고

아버지에게 핀잔을 듣고서야

쓸쓸히 관심도없는 Tv앞으로 돌아가는

 

할머니가있다.

 

 

할머니는

 

자식들이 당신께서 직접하신 밥을먹을때 가장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순간이 할머니 삶의 결정적순간이며 우리가 취미생활을하며 느끼던 많은 감정들을 그순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자식들은 당신처럼 살게하지 않으려 그런 취미생활따위는 포기하며 살아왔을지 모른다.

 

그렇게 할줄아는것이 '밥하는것' 말고는 남지않은 오래된 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자식과 손주의 부엌에 오지말라는 '명령' 어떤 금단현상을 참는 환자처럼 불안해 할지도모른다.

 

그래서 자식들이 한눈이라도 팔때면 휘청거리는 다리를참으며 몰래 부엌으로 와서는 떨리는손으로 쌀씻을 준비를 하는건지도 모른다.


가끔 창가에서서 멍하니 창밖을 본다.

지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무슨생각을 할까

그렇게 사랑하던 손자의 얼굴도 자주 잊어버리는 할머니는...

지나는 이들의 모르는 얼굴을 바라보며 무슨생각을 할까.

 

 

지금도 할머니는

 

할머니의 손에서 억지로 밥주걱을 뺏어야하는 내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점이 흐려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자신이 할수있는 마지막 '습관'마저 빼앗긴

 

오래된 여자가

 

나를 바라본다.




2010.07.3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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